일상의 기록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5월요일 2020. 7. 26. 03:16

송곳에 나온 명대사.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학생 때 처음 이 대사를 들었을 때 "와 멋있다"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의미에 대해 깊게 고찰해보지 못했다. 

딱 드라마의 내용만큼, 상류층은이 서민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사람은 보통 보이는 것만 만큼만 이해한다.

 

벌써 한 10년이 지나고 이 대사가 가슴 속에 계속 남는 이유는 매 순간 어려움에 봉착할 때마다 이 대사를 떠올리면 마법 같이 마음이 안정되고 모든 상황이 아주 잘 통제되고 있다고 안심이 되었다. 모두가 각각의 사정이 있고 입장이 있는 것이니 남이 나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도, 내가 남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였다. 

 

지금와 생각해보면 그 '당연함'을 그 때도 알았다면 나는 내 주위 사람들에게 상처주는 일은 없었을 텐데 라는 후회가 10년치 정도가 몰려왔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이 몇사람이 있다.

 

때는 대학생 시절이다.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여자친구는 지독히도 나와 다른 부원들 사이에서 중립을 지켰다. 그 중립은 공사를 구분하지 않고 말그대로 지독한 기계적 중립이였다. 나는 남자친구였으니 그래도 내 편으로 남아주길 바라곤 했지만 용납해주지 않았다. 여자친구의 변명은 간단했다. 

 

"너와 그 부원과 일어난 일은 별개고 나에게는 잘하고 있으니 나는 나의 감정에 솔직히 따르겠다"

 

그녀도 그런 결정은 한 것이 그녀는 동아리 선배로서 성숙하고 공정한 사람이 되고싶어 했고 개인 감정을 섞어 불필요한 분쟁과 갈등에 휘말리는 것을 경계한 것이라 지금에서야 크게 공감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20대 초반에 가지기 힘든 성숙함이었다고 생각한다. 그 때는 그게 어찌나 서럽고 가슴에 생채기가 남는지 이루 다 말 못할 정도로 후에 헤어짐에 단초가 되었고 서운함을 점점 커져 이별에 다다르게 되었다. 어린 나는 세상엔 내 편이 필요하지 판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그런 성숙하고 지혜로웠다 할 수 있는 여자친구를 이해하지 못하고 난 스스로 그 곁을 떠났다. 그녀는 영문도 모른채 이별을 받아들여야했을 것이고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 나의 무지로 상처를 주었다. 그녀는 그녀의 사정 있었다는 것을 깊게 이해하고자 노력하지 않은 나의 경솔함이 그녀의 20대에 큰 상처를 남기게 된 것이다. 

 

10년이 넘은 일이기에 지금은 마음에 두지 않고 있겠지만 당시에 20대가 감당하기엔 큰 일방적인 이별 선고이였음을 확신하기에 나에게 있어 지워지지 않는 큰 내 인생이 불찰 중 하나이다. 

 

사실 전 여자친구에게 상처준 일은 가볍게 남아있는 생채기정도의 기억이라면 사실 마음에 두고두고 내 인생을 두고 곱씹고 사죄해야 할 일은 누구네게나 복잡한 감정을 주는 '아버지'라는 기억이다. 

 

20대 때의 아버지의 기억은 증오가 거진 모든 감정의 공감을 차지했다.

술로 벌개진 얼굴로 집에 들어와 알수 없는 말을 반복하며 기억이 나는 것만 십여년. 

그 시간들을 어떻게 버텨냈는지 내 자신이 참 장하다 라는 생각이 든다. 하루가 다르게 술에 취해 알 수 없는 말을 반복하며 잠을 재우지 않고 십여년을 버텨낸 것이 참 용하다. 

 

그런 사건이 일어나면 항상 난 가까이 살고있는 고모를 찾아가 하소연하기 일쑤였다. 

놀랍게도 고모의 반응은 대학생 때 만났던 전 여자친구가 했던 말과 같이 내 편을 들어주는 것이 아닌 상황을 객관적으로 진단했다.

하나 달랐던 점은 위로가 동반되었다는 것이다. 

 

고모는 마치 모든 것을 알고 있고 이해한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언젠간 너도 이해 하게 될 거다. 미안하다"

긴 말이 오고가지 않았다. 조용히 듣고 또 들어주었다. 

고모는 모든걸 알려줄 수 있는 그 나이가 되길 바란다는 말을 덧붙혔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어려서 알지 못한 일들을 알게되었다. 가족이 겪어야했던 돈과 관련된 갈등들에 대한 것들이였다. 

돈에 대한 갈등에 대해 히스테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 계기이다. 

 

아버지는 지난 십여년간 술에 얼굴이 벌개진 채 들어와 나에게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며 나를 괴롭혔다. 

그 십여년은 어떻게 버텨냈지 라며 내 자신이 참 장하다 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 시간의 무게는 깃털같이 가벼웠던 순간이였다. 

 

아버지가 십수년간 견뎌야했던 가장의 무게, 차마 자식에게 말할 수 없는 고충과 걱정거리에 비하면 이젠 기억조차 잘 나지 않는 그런 어린 시절의 기억들은 차마 입밖으로 꺼내기 민망한 수준의 고난이였다. 

 

돌아가신 아버지 이야기가 계속 입밖으로 튀어나오는 이유는 결국 내가 서는 곳이 아버지의 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쉽게 쉽게 결정하는 혼자의 삶이 아닌 여러가지를 고려해야하는 가족의 삶을 살게되면서 세상의 색은 달라졌고 풍경은 이전과 다르다. 

 

앞으로 살아나가야할 인생이 차고 넘치기에 감당해야할 무게는 점점 강렬해질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내가 서는 곳이 점점 아버지가 서있던 그자리로 가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별거 아니라고 하다보면 어떻게 되고 어떻게 하게되는 그런  쉬운 인생이 아닌 외통나무에서 한걸음씩 내딛듯 한걸음 한걸음에 신중을 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기가 오고 말았다. 

 

아버지가 봤던 풍경을 이해하고자 노력조차 못했던 무지에 대한 대가로 지금 내가 선 자리가 너무나도 무겁다. 

짊어지고 간다. 아버지가 했던 실패, 내가 했던 실패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이 대사를 마음에 새기고 좋은 아버지가 되고자 노력하겠다. 

 

곧 아빠가 되는 사람의 다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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