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복' 이라 부르기엔 남사스럽기 그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노력이 하나있는데, 가끔씩 하는 '오래 달리기'이다. 

10키로가넘는 마라톤도 아닌 길어야 3~4키로 정도 체력장 수준의 '오래달리기'가 나의 일상적 극복이다. 

어린 시절에 기억하지 못하는 계기로 기관지에 모종의 문제가 생겨, 공기가 안좋거나 숨이 조금이라도 가파지는 기색이 있으면 

목에 가래가 쌓여서 뱉지 않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매연이 가득차 공기가 썩 좋지 않은 도심을 거닐 때나 하수구나 가로수 근처에 침을 뱉는 못볼 꼴을 꽤 많이 연출하곤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침이야 뱉으면 그만이니 남들에 비해 달리기하는데 있어서 큰 핸디캡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 또 조금이라도 불리한게 있으면 내 한몸 아니 마음 편하고자 적극 핑계로 만들어 버리곤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래서 인지 오래달리기는 나에게 나를 증명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말하자면,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명곡을 작곡해낸 베토벤의 느낌을 내 멋대로 가져와서 자기위안으로 삼는 것이다. 

 

고작 3~4키로 정도 뛰면서 별 생각을 다하게되는데 대략적으로는 이런 생각들이다. 

 

"..한발자국만 더 한발자국만 더..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여기서 지면 안돼..고작 이거밖에 안되는 녀석이였냐.."

 

달리기만 하면 저 마음속 싶은 곳에 숨겨두었던 중2병이 발현이 되는데 그래도 막바지에는 가장 어른스러운 감정이 나온다. 

악바리 근성에 기대지 않고 경험에 기대서 나름의 현명한 이유를 내 몸과 마음에 안겨준다. 

 

'군대는 이거보다 더했어'

 

군장매고 총까지 앞으로 들고 6키로씩 뛴 적이 있었다.

어느정도까지 한계를 부딪쳤는가 라고 했을 때 눈 앞에 시커매지고 정신을 잃기 바로 직전까지 갔고, 

어느정도까지 그 경험이 뇌리에 각인이 됐는가 라고 했을 때 인생에서 겪은 고통 중 가장 큰 신체적 고통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내 생에서 가장 '극복'에 가까운 사건이였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많이 먹는다 라는 말이 '경험'의 중요성을 적절히 꿰뚫는 말이다.

극복도 해본 놈이 잘한다. 

 

참고 버티고 또 참고 버티면서 끝내 열매를 본 자만이 다음 게임에서 또 다른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듯이, 

극복의 경험만이 또 다른 극복을 창출해낼 수 있다. 

 

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다보니 한국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떨어지고 사실 현지 분위기에 대해 감이 잘 안오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적폐청산' 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모든 이슈가 빨려들어가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분리수거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적폐 청산'이 주춤하자 '종전'이라는 블랙홀이 등장했고 '종전'이라는 녀석도 금새 시들해졌지만 악재인지 호재인지 '극일'이라는 블랙홀이 등장했다. 엄밀히 말하면 적폐청산의 재등장이다. 과거사 청산.

 

쓰레기통을 비울 때 바닥까지 치우지 못해 남은 음식물 찌꺼기 마냥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일제의 잔재'는 대한민국 사회에 깊은 곳에 자리잡고 존재해왔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자랑스럽지 못했다. 자랑스럽기 쉽지 않았다.

 

우리의 한글은 과학적이고 위대한 문자이고, 유례를 보기 힘든 국난에 사람들은 의병이 되어  모두 일어나 극복한 사례가 수도 없었고, 한국 사람들의 근면성실함은 세계 어디서나 인정 받았고, 초압축성장으로 30년만에 순식간에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 11위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에 보란듯이 일어난 나라이지만 한국은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였다. 

 

구시대의 막내가 되고자 했던 이들은 군홧발에 짓밟혀 먼지가 되거나, 공안의 도끼에 찍혀 이슬이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 중 일부는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했고, 끝까지 저항한 자는 저잣거리에서 처참한 수모를 당해야했다. 

 

나라를 통채로 팔아먹어도, 우리의 딸과 아들을 팔아넘겨도,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주인을 물어도, 대한민국은 '그래도 되는 나라'였다.

잘못 끼운 단추는 몸을 조이고 거동을 불편하게 한다. 이제는 더이상 잘못 끼울 단추도, 불편해질 공간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아주 촘촘히 잘 짜여진 정부다. 

천재 건축가가 완벽히 설계하여 빈틈없이 훌륭한 경외로운 마천루가 아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염원하는 국민 한명 한명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로 이루어진 견고한 벽이다.

 

'극일'은 예뻐지기 위한 단순한 '단식 다이어트'가 아니다. 

'극일'은 온갖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노폐물과 지방덩어리를 몸에서 지워내는 '건강 다이어트'이다. 

 

우리 안에 살아있는 극복의 역사과 경험을 다시 일깨워 '적폐청산'의 엔드게임인 '극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기를 지독히 염원한다.

 

 

 

ps. 

 

쓰다 울뻔, 

실은 울었음.

엉엉.

밤새 시달리고 이 부끄러운 사실을 털어내려놓을 것이 없을 때는 내 발걸음을 항상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살면서, 삶에서 힘들 때 내 이야기 들어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이 지독했을 지언정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였다는 것을 이제서야 돌이켜본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나에게 있어 '은인'이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을 입술을 지그시 문 채 끝까지 들은 그녀는 나에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이 들고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될거다. 미워하지마라"

 

그녀는 불교에 꽤나 심취해있던 사람이였고 그래서 인지 당시 나에게는 그 답변도 어떤 사실관계를 떠나 열반의 오른 현자와의 문답으로 다가왔다. 그녀를 가장 빈번하게 찾아간 시기에는 인격이 형성이 채 되기 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어리고 또 어렸다. 밤새 나를 흔들고 간 밤을 언젠간 너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해탈의 답은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에게는 무의미했지만 지난 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간들은 위로였다.

 

밤은 나에게 그래서는 안됐다. 밤은 그래서는 안됐다. 세월이 흐르더라도, 내 나이가 지금의 두배가 세배가 되더라도 나의 밤은 그래서는 됐다. 나는 그 밤의 영원한 피해자 일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점점 강해졌고, 밤은 점점 시들시들해졌다. 밤은 그렇게 잔잔한 바다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밤은 시들어버렸고 내 인생에서 한 순간에 홀연히 연기처럼 퇴장했다. 

 

밤의 퇴장이 가져온 일말의 애잔함과 슬픔은 스톡홀름 증후군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애증'이라 부르기도 한없이 하찮게 느껴지던 감정이였다. 너무 긴 시간 나를 괴롭혀왔던 밤이 완전히 퇴장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지부조화라 치부했다.

 

수년이 흘러 '삶의 무게'라는 단어가 그 무게를 보여주거나 느끼게끔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 나에게 다가왔다, 

가족을 책임져야한다는 강한 의무감이 찾아왔다. 

하루하루가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고 내딛는 나의 발자국이 허공으로 향해 내딛는 것이 아닌가 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제서야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그녀의 말이 휘몰아쳐 내 머리를 때렸고, 지금이 시간이 지난 그 때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밤은 내가 처음으로 감당해본 삶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수십년간 지탱해왔다. 수천일의 어둡고 세상이 흔들이던 밤은 나를 윽박지르던 것이 아니라 어깨를 짓누르는 고생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밤이 소멸해버린 후에야 알아차렸다. 

 

그것도 사랑이였음을. 서툰 사랑이였음을. 

나의 어리석음이였음을, 보잘 것 없는 오만함이였음을. 

 

밤은 그렇게 먼 곳, 다시는 가지러 가지못할 곳에 두고온 잃어버린 일기장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서 사라지지 않는 불편함이 되었다. 아니 죄책감되었다.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사죄하고싶다. 

처음 경험해본 아들이라, 삶의 무게가 뭔지 모르던 어린이라 당신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상처를 감싸주지 못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일은 없다고, 당신이 지금의 내 마음을 알게 될 일도 없다고 잘 알고있지만 내 마음이 당신에게 닿기를 간절히 영원히 바랄 것이다. 

 

당신과 같이 '삶'에게 지지 않겠다.

당신과 같이 '어두운 밤'이 되지 않겠다.당신의 어두움을 품은 '별 빛 가득한 밤'이 되겠다.  

마음에 닿지 못해 갈 곳 잃었던 당신의 사랑마저 모두 세상에 베풀겠다.

당신의 몫 만큼 사랑하겠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그리 좋아하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OST를 들으며 당신을 추억하겠다.

 

그 때의 방법이 있고 그 때의 단계가 있다. 

'그 때'라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주 적절한 '기간'이다. 

우리는 종종 지나고 나서 "그 때가 그 때였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일하게 되면서 감사하게 되는 부분이 한가지만 있다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어지간한 '그 때'는 잘 챙겨온 삶이라는 것이 끊임 없이 증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걸음마를 떼고, 한글을 읽고, 예의범절을 배우는 등 배워야할 시기에 과한 느낌이 있지만 '그 때'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사회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로 한가지가 되었든 여러가지가 되었든 결핍을 부지런히 타인들에게 드러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해외에 나와 일하면서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 곳에서의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당연시 하는 요소들이 당연스레 결핍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은 상당히 나이대별로 달성해야하는 달성과제가 꽤 명확히 정해져있는 경직된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별 생각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달성 과제정도는 모두가 알고있다. 

 

내 사례의 경우, 그것에 싫증이 나 버티지 못해 떠난 한국이지만 친구들 중에서는 이를 아주 잘 따르고 지켜서 다음 달성과제를 바라보면서 사회가 부여한 충실한 삶을 살고있는 친구들도 몇몇이 있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사회는 '진로'라는 개념이 잘 없다. 나오는 대로 나오고, 살아지는 대로 산다.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의 저지선이 없다보니, 인격의 밸런스가 붕괴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나타난다. 

 

가령 예를 들어,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기본적인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아이들은 학우들에게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게 악순환은 시작되고 또 반복된다. 

 

한번 놓쳐버린 '그 때'는 잔인하리라 할만큼 큰 댓가를 치뤄야한다. 놓친 시간에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행운이 오지 않는 이상, 다가올 '그 때'도 놓치기 십상이다. 잘못 고른 밥그릇 마냥 매 끼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사회는 그렇게 흘러간다. 

타고난 운이 좋아 제대로 교육 받은 부모를 만나거나 타고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사회는 어떠한 인격 안전망도 펼쳐주지 않는다. 그렇게 대부분이 태어난 순간부터 나락으로 빠진다. 

 

살고있는 도시의 공기가 안좋으면 자연스레 살고있는 시민들의 폐가 안좋아지듯, 사회적 분위기는 타고난 운마저 부패시키기도 한다. 

두눈박이는 외눈박이 세상에서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눈을 감은 들 외눈박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두눈박이가 아닌 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매년 떠나는 사람이 수백 수천이다. 그렇게 외눈박이들은 외눈으로 보는 반쪽 짜리 세상에 갇혀 살게 된다.

 

'그 때'는 단순히 서사적 시점 뿐만 아니라, 관계적 시점 또한 포함한다. 

다시 말해, 언제 누구를 만나냐가 우리가 기대해야하는 '그 때'의 조건이다.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떠난 미국 여행에서 만난 한 남자였다. 

이 거대하고 드넓은 세상에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그 남자와 내가 놓여졌고, 만남은 게임을 바꿔버렸다. 

"하필이면 나는 늦잠을 자 조식 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 노트북을 들고 식당으로 갔고, 식사를 하면서 둘 곳 없던 눈을 두기 위해 네이버을 접속을 했고, 마침 늦잠을 잔 그 남자도 느즈막히 내려와 조식을 먹던 중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노트북 네이버 화면을 통해 알아차리고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고, 하필이면 같이 세계여행을 하던 그의 아내는 핸드폰에 문제가 있어 남편의 전화를 받지 못한 상황이였고, 그는 내 폰을 통해 가까스로 아내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는 답례로 한식당 뷔페를 사주었고, 우리는 밥을 먹으며 서로의 인생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모험에 대한 꿈과 용기를 주었고 날 이자리에 있도록 만든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때'의 종류가 몇이든 조건이 무엇이든을 떠나 이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 때'가 존재한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또 생을 마감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누구도 '그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눈 앞 마쉬멜로우만을 노려보는 인내와 신뢰가 부재한 그런 사회이다. 

 

 

 

글을 쓰기 앞서 목적과 대상이 없을 없다. 그냥 목적이 배설인 경우가 굉장히 많지만 글은 혹시나 모로코로 진출 예정이 있는 기업이나 취직을 앞둔 분들, 여행이 아닌 비지니스 목적으로 모로코를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면서 쓰는 글입니다. 

 

아랍 국가 4년차. 

 

흔히 한국 사람들이 세가지 다른 의미를 단어를 동일한 의미를 사용합니다. 

아랍, 무슬림, 중동.

 

단어의 정의를 해야할 필요가 있을 같습니다. 

 

아랍이란 민족적 개념이기 때문에, 중동지역의 레반트 지역과 사우디 아라비아와 UAE가 있는 아라비아 반도와 그 주변 이라크, 그리고 북아프리카까지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무슬림'은 종교적 개념입니다.

이슬람을 믿는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범위가 훨씬 넓습니다. 무슬림 국가라 할 때는 위 아랍국가들을 포함하고 동남아에서 무슬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있는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등을 일컫는 개념입니다. 

 

'중동'은 지정학적 개념입니다. 

보통 중동이라 할 때는 위에거 언급한 아라비아반도쪽을 일컫습니다(사우디, 카타르, 이라크, 이집트, 요르단 등등)

사실 이집트는 지리적으로는 아프리카이지만 아라비아 반도와 딱 붙어있어서 중동으로 봐도 무방할 듯합니다. 석유 개발 이후로 사막에서 뿜어져 나온 석유로 비약적인으로 발전하여 부를 축적하고 있는 지역은 아라비아 반도와 일부 동남아 국가, 북아프리카 일부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수십년째 경제난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최근 몇년 간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석유 값이 하향조정됨에 따라 예전만큼 노다지 시장이 아니게 되어버린 덕분에, 석유국가들은 여러모로 다른 방도를 찾고있는 실정입니다. 최근에 사우디 왕세제 빈살만이 한국을 방문한 이유도 이와 일맥 상통합니다. 가진게 석유 밖에 없고 이게 얼마 안간다는 걸 너무 늦게 알아버린거죠. 

 

저는 아랍국가이자, 무슬림 국가이자 중동이 아닌 북아프리카에 위치한 모로코에 살고있습니다. 

 

제 글은 항상 서두가 길어요. 

 

아랍국가에서 몇년 간 일해본 경험으로는 뭐든 일단 열심히 해보려는 한국인과 비교해서 아랍국가들의 기본적인 마인드가 상충되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우선은 모로코에 초점을 맞춰서 서술하고자 합니다. 

 

첫째로, 대부분이 열심히 하지 않고 책임감 개념이 희박하다 

한국사람이 지독히 열심히 하는 경향이 있긴 하지만 아랍사람들은 지독히 열심히 안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단 일을 하는데 있어서 책임감이 결여되어있는 경우도 상당수이고, 일이 잘못됐을 때도 핑계나 거짓말로 일단 그 상황을 모면하려는 행동 양태를 보입니다. 한국사람들은 하나 하나 처리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이쪽은 일단 대체로 대충하고 넘어가려하기 때문에 사실 아래 직원으로 데리고 있더라도 내가 일을 하는지 얘가 일을 하는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걔중에서도 뛰어난 친구가 있기 마련입니다만, 해외에 지사를 차리고 하는 과정에서 인사적인 부분을 제대로 짚고 넘어가기도 힘들고 사전 지식 없이 부임해오는 주재원들도 많기 때문에 HR문제는 항상 잔존하는 커다란 이슈입니다. 

 

둘째로, (쓸데없이) 자존심이 세다. 

후진국일수록 인종주의가 심합니다. 모로코의 경우 경제규모가 한국에 1/10정도이고 빈부격차도 굉장히 심해서 발전가능성이 큰 나라라고 보기엔 힘듭니다. 모로코의 장점은 아프리카 대륙에서 그나마 안정적이다 라는 것입니다. 사실 아프리카에서 꽤 잘 나가는 국가 중 하나지만 전세계적으로 보면 필리핀보다 살짝 떨어지는 개도국 경제규모입니다. 

아시아 사람에 대한 인종주의가 있습니다. 전세계 어디를 가도 아시아인을 깔보는 시선은 느낄 수 있습니다. 일하는데 있어서 힘든 점은 바로 이 점입니다. 한국회사에서 일하면서도 한국의 경제적 규모에 대해서 무지한 상태로 아시아의 소국으로 취급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심지어는 우리나라(모로코)와 비슷하지 않아? 라는 식으로까지 얘기를 합니다. 아시아사람을 기본적으로 무시하기 때문에 지시를 제대로 듣지 않는 경우도 종종 발생하고 담합해서 업무를 고의적으로 지연시키기도 합니다. 조금이라도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낸다면 아예 태업을 해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사실 이런 사고방식에는 복잡한 계산이 들어간 것이 아니라 아시아사람에게 지기 싫은 것이라는 태도가 반영되어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로, 숙련도 발전이 느리고 결국엔 멈춘다.

첫번째 이유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수십명의 모로코인을 고용했고 수백명을 만나봤지만 뭔가 한가지를 시켜서 1년 2년이 지나면 숙련도가 오르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한국 사람 기준으로 생각하면 낭패입니다.

기본적으로 열심히 하지 않고 책임감이 없기 때문에 1년이 지나도 2년이 지나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오리발을 내미는 것이 상당수입니다. 한국에서는 왠만해서는 6개월만 지나도 뭔가 맡겨놓고 시킬 수 있는 환경이 되는데 모로코는 사실 3년 4년이 지나도 새로 들어오는 사람과 퍼포먼스가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다는 표현이 정말 적절합니다. 첫 6개월에 제대로된 퍼포먼스가 안나온다면 정말 심각하게 고민해야합니다. 노동법이 세고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현지 노동자편을 들기 때문에 빠르게 결정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업무는 업무대로 낭패보고 회사에 금전적인 피해가 커질 겁니다. 모로코에서 인력관리는 한국에서의 인력관리와는 차원이 다릅니다. 모든 직원에 대해 마이크로 컨트롤을 하지 않는 이상 끊임없는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입니다. 

 

넷째로, 직책에 집착한다.

한국의 경우, 입사하게 된다면 명확한 진급의 과정이 있습니다. 사원 주임 대리 과장 차장 부장 등 회사마다 다르지만 일련의 정해진 룰과 과정이 있습니다. 모로코는 진급의 개념이 잘 없습니다. 있긴 하지만 어떤 시스템적으로 구축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가는대로입니다. 

그래서 이력서를 검토해보다보면 20대 중반 후반인데도 불구하고 모두가 매니져고 디렉터입니다. 우리나라로 치면 30살에 차장 부장 타이틀을 이력서에 적어놓는 격입니다. 믿을 게 전혀 못됩니다. 몇년 일도 안하고 매니져 타이틀 내놓으라고 깽판치는 모로코인도 있습니다. 

모로코사람은 엔지니어와 매니져라는 타이틀에 집착합니다.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해당 직책을 이력서에 적어놓았다 하더라도 신뢰하지 말아야하며, 업무능력을 절대 보증할 수 없습니다. 그냥 월급을 더 받으려는 수작에 불과합니다. 

 

꽤 잔인하게 모로코사람에 대해 악평을 했지만 사실 이런데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위와 같이 모로코에서 좋은 직원 구하기 힘든 이유는 몇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대로된 국가시스템의 부재입니다. 

기본적으로 왕국이기 때문에 모로코 국민들은 '시민'이 아닌 '백성'들입니다. 사실상 의회도 식물의회이기 때문에 참정권이 의미가 없습니다. 

따라서 국가에서는 우민화정책을 펼치고있습니다. 우민화 정책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제대로된 교육을 제공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다워지는데 중요한 인문학이나 철학에 대한 교육이 부재하고 비판적인 사고가 거세되어있는 사회입니다.

 

천안문 사건에서 좋은 중국인은 다 죽었다 라고 흔히 농담하듯 말하듯이, 모로코도 전 왕 세대에서 비판적 소리를 내던 모로코인들은 철창에 갇히고 죽었다고 얘기합니다. 제대로된 교육자와 시스템 없이, 유럽과 미국에서 하듯이 엔지니어에 대한 환상만 심어줘서 아무런 기술, 지식도 없는 무늬만 엔지니어들만 대량 생산되고 있습니다. 흔히 모로코에서 엔지니어라고 하면 엘리트와 동의어로 쓰이는데 업무능력은 수준이하고 사실상 별다른 대안이 없어서 쓰고 있는 실정입니다. 제대로된 대기업은 인도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든 외국 엔지니어를 데리고 와서 씁니다. 돈을 두배 주더라도 일을 하는 사람이 낫다는 거죠. 

 

사실 국가에서 인력 수준을 높히려는 노력 자체를 안하기 때문에 앞으로 상황이 더 나아질 것이다 라는 전망을 하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이에 환멸을 느낀 젊은 모로코인들은 왠만하면 캐나다 혹은 프랑스 쪽으로 이민을 생각하고 있고 실제로 행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통계적으로 모로코 사람들이 인구에 비해서 상당히 많은 숫자가 외국 이민행을 택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식민지배 극복 실패입니다. 

모로코는 40년 정도의 프랑스 식민 지배를 받았습니다. 36년의 일본 식민 지배를 받은 우리나라와 기간이 상당 부분 겹칩니다. 

하지만 식민지배에 대한 관점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우리나라는 여전히 강한 저항을 보이는 반면, 모로코는 프랑스에 대해 호감을 넘어 동경을 합니다. 모로코 내 프랑스인들은 상당히 대접을 받는 편이고, 모로코에 상당한 재산을 보유하고있는 프랑스인도 꽤 많습니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때문에 사실상 모로코는 경제 문화 정치 전분야에 걸쳐 프랑스에 예속된 상태이며 특히 경제 문화적으로는 프랑스에 완전히 의존하고 있습니다. 모로코 부유층의 아이들의 경우 서로 대화할 때 모로코어를 하지 않고 프랑스어로만 대화할 정도로 자국 문화, 언어를 경시합니다.

 

과거를 청산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에 정의가 바로 서지 못하는 나라입니다. 따라서 빈부격차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패배주의가 아주 팽배합니다. 부정부패가 일상화되어 있어서 경찰이나 관공서, 병원에서 더 나은 서비스를 받기 위해 뇌물을 주는 것은 물론 뇌물을 요구하는 것 이 아주 일상적인 풍경입니다. 노력을 통해 뭔가 얻어내는 사회가 아닌 부정적인 방법이 득세하는 사회입니다. 

 

이와 더불어 모로코사람들은 외국으로 나가고 싶어하면서도 외국인을 질투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이란 나라가 어떤 뼈를 깎는 과정을 거쳐 부를 얻게 되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가진 부에 대해서만 질투를 하고 불평등을 말합니다. 열등감으로 꽉차 있으니 자신의 처지에 대해서 항상 불평하고 만족하지 못합니다. 한국사람은 모로코사람에게 있어 질투의 대상입니다. 이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모로코사람들도 있습니다. 

 

모로코로 진출하는 한국 기업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문제에 봉착합니다. 더 문제 인것은 현재 모로코에 지사가 있는 회사중 어떤 회사도 이를 극복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회사가 HR이슈로 수많은 돈과 노력을 소모하고 있습니다. 모로코에서 사업을 하고자 한다면 위 나열한 이유에 대해 검토할 충분한 준비 기간을 가져야함을 물론이고, 모로코사람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먼저 전제되어야 합니다. 

 

기억이 추억이 된다, 

 

기억은 언제 추억이 될까. 

 

어렸을 땐 하루 하루가 달랐다. 

나의 몸이 성장하듯, 마음도 성장했다. 모든 것들이 성장했다. 그리고 변했다. 

세상은 오색빛으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이 아름다웠고 거대했다. 

 

나는 강아지였다.

 

난생 처음 '눈'을 본 강아지처럼, 집 앞 근린 공원에 처음 나가 처음 맡는 수천가지의 나무 꽃 사람의 향을 처음 맡아 머리가 어지러워 어찌할바 모르고 흥분한 그런 강아지였다. 

 

그렇게도 아름답던 세상은 뻔해졌다.

찬란하던 빛을 잃은 세상은 그렇게 바래져갔다.

기억이 추억으로 색이 변하던 순간이다.

세상의 빛이 바래고 새로운 것이 더이상 새롭지 않게 느겨지면서 나의 세상은 지루하기 짝이 없는 함정이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의 인생은 끝도 없이 잃어만 가기 시작한다. 

늘어가는 것은 추억 뿐인걸까. 

 

이름만 들어도 남자의 가슴을 떨리게 하는 기계들이 있습니다. 

자동차, 노트북, 카메라 등.. 저는 세탁기, 식세기 이름만 들어도 그렇게 가슴이 쿵쾅쿵쾅합니다. 

 

저의 주말을 알리는 기계는 바로 세탁기와 식세기입니다. 

식세기를 아침에! 아침에! 돌리는 순간 아! 주말이구나 라고 행복감이 몰려옵니다. 

 

이번 편은 식세기입니다. 식기세척기. DISHWASHER. DW.

 

 

 

지금까지 두개의 식기세척기를 사용해보았습니다. 

하나는 보쉬, 하나는 엘지. 솔직히 두 브랜드를 비교하라 한다면 자신이 없습니다. 둘다 식세기 시장에서 내로라하는 브랜드이고, 세척력이나 바디의 아름다움 또한 비교가 힘들정도로 예쁩니다. 

 

각진 네모에 빛나는 회색.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와이프를 생각한다는 핑계로 결국 제가 고집해서 쓰고있습니다. 벌써 3년째 쓰고있는데 만족도가 굉장히 높습니다. 식사하고 슥슥 그릇만 넣고 자기전에 식세기를 돌리면서 하루를 마감하는 일상의 행복을 놓치지 마세요.

 

식세기는 산다 안산다라고 고민 할 일이 아니다. 여건이 되면 무조건 사야하는 필수 가전입니다. 고민해야할 점은 디자인, 크기와 기능이겠죠. 사실 브랜드는 취향이고, 기능에 스팀기능이 들어간다거나 디자인을 중점으로 보고 고르시면 될 것 같습니다. 

냉장고과 세탁기와 같이 한번 사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쓸 수 있는 가전입니다. 정말 놓치지마세요 너무 좋습니다.

 

식세기에 대한 잘못된 편견만 다루고 글 마치겠습니다.

 

1. 식세기의 세척력은 손세척에 미치지 못한다?

- NO. 최근 나온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식세기 세척력이 더 우수하며, 물 소비량도 1/10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2. 식세기에 넣기 전에 초벌세척을 해줘야한다?

- YES OR NO, 식세기 내에서 덩어리가 큰 건더기 호스안에서 막혀버리면 곤란해지므로, 덩어리를 제거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하지만 그 외의 식기는 그대로 쓱 잘 쌓아서 넣어주면 예쁘게 씻겨서 나옵니다. 단, 늘러붙는 마른 밥풀과 같은 경우는 깨끗하게 씻기지 않는 경험이 있습니다. 

 

3. 식기세척기는 전기와 물을 많이 먹는다?

- NO, 물 소비량은 위 연구 결과 기사에 손세척 대비 10%라고 잘 나와있습니다. 전기 또한 다리미를 한번 쓰는 정도로 한국 기준으로 매일 돌릴 경우 최대 6천원 내지 7천원정도 요금이 더 나오는 정도라고 합니다. 

 

관련 기사

: http://www.koreatimes.com/article/20190506/1246098

 

‘식기 세척기 vs 손 설거지’ 누가 더 잘 씻을까 - 미주 한국일보

자동으로 그릇을 씻어 주는 식기 세척기 시장이 매년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할 만큼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지만 일부 소비자는 여전히 기계의 능력에 의구심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한두 차례 헹궈주는 정도는 할 수 있어도 기름때나 조그만 음식물을 인간만큼 꼼꼼하게 씻어내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때문이다. 최근 이런 불신을 깰 연구 결과가 나와 이목을 끌고있다. 기계의 세척 능력이 더 우수할 뿐 아니라 물 사용량 등 효율성에서도 더 높다는 흥미로운 결론이었다.LG

www.koreatimes.com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_id=201905061000001

 

LG전자 식기세척기, 손 설거지보다 낫네

LG전자 식기세척기의 세척력이 손 설거지보다 더 뛰어나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LG전자는 부산대 감각과학...

biz.khan.co.kr

 

저는 일본 소설을 꽤 좋아합니다. 텍스트의 이미지화가 수월하다고 해야할까요? 영미권이나 러시아쪽 소설은 아무리 읽어도 수사적 표현이나 배경같은 것들이 저에게는 와닿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일본은 언어적으로도 가깝고 지리적, 감성적인 부분도 상당히 밀접해서 그런지 문장 하나하나가 감성을 어우르는 경험을 왕왕 하게됩니다. 

 

일본 소설 중에 백야행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 

드라마로도 나와서 꽤 인기를 끌었습니다. 드라마를 보면서 으흐흑으으흐흐흐흑 흐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일본 배우 야마다 타카유키가 나와서 저는 더 좋았습니다. 잘생겼어... 나중에 소재 떨어지면 이 배우에 대한 리뷰를 써보려고 합니다. 

일본 드라마 백야행(2006)

 

제 글은 항상 서론이 길어요. 글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가 있다고 합니다. 더 나이가 들면 얼마나 설명충이 될지 가늠이 안됩니다. 

위 소설과 드라마는 사랑이야기입니다. 서로 사랑하지만 같이 한낮을 같이 걸을 수 없는 슬픈 운명을 가진 연인의 이야기입니다. 

 

저는 '백야행'을 다른 의미로 해석하고자 제목으로 차용했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풀어놓은 이야기는 제가 사우디아라비아에 있을 때 만났던 친구들의 이야기입니다. 

사우디에서 일하게 되면 업무적으로 부딪치는 사람들은 사우디 사람들이 아니고 제3국사람들입니다. 파키스탄, 시리아, 레바논, 이집트, 필리핀, 인도, 모로코, 예멘 등등 흔히 말하는 대표적인 인력 수출국들이거나 정치적 불안정으로 갈등 국면에 있는 국가들입니다. 

 

인력수출국가에서 온 사람들이야 나름대로야 사연이 있겠지만, 있을 법한 사연들입니다. 가족들이 부양해야 하거나, 본국 임금이 너무 적어서 왔다거나 그냥 생각 없이 온 사람들도 있죠. 혹은 이민 2세대 3세대들도 많습니다. 사우디가 석유로 부강해질 무렵, 사우디 국적을 남발하곤 했는데 그때 당시 아무 생각 없이 성지하나 믿고 오신 분들의 다음 세대들이죠. 

 

그 다음 세대들 중에서 본국이 불안정해 돌아가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얘기해보고자 합니다. 

 

시리아 국적의 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20대 중반의 여자입니다. 

배경 설명을 조금 하자면, 사우디 정부는 사우디 내에서 거주하는 외국인들을 내쫓는 정책을 진행 중입니다. 강제 추방할 수 없으니 인두세를 어마어마하게 걷어버립니다. 본국이 불안정한 국적의 사람들은 갈 곳이 없기 때문에 울며 겨자먹기로 세금을 내며 사는 수 밖에 없죠. 해외여행도 쉽지가 않습니다. 혹시나 재입국 시에 입국 거부를 당하게 되면 정말 국제 미아가 되어버리는거죠.

 

학교를 다닐 때 사우디 사람이 아니라는 이유로 괴롭힘도 종종 당하곤 했습니다. 뒤에서 머리를 당기거나, 강의실에 들어갈 때 시리아년아 꺼져라! 라는 야유를 받기도 했죠. 시리아 사람들이 피부가 하얗고 미모가 뛰어난 탓도 있었겠지만 이유없는 제노포비아입니다. 사우디 사람들은 외국인이 들어와서 피해받는게 없습니다. 오히려 본인들은 놀고먹으면서 실제로는 외국사람들이 와서 이 나라를 굴리고 있는거나 다름이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입니다. 이 친구에게는 사우디아라비아는 거대한 감옥입니다. 떠날 수도 없고 머무르고 싶지도 않은 땅입니다.

 

척박한 땅에서 꿈은 계속 키웠습니다. 만화도 좋아하고 그림 그리는 것도 좋아합니다. 디자인을 배워서 프리랜서 디자이너로 일하고싶다고 합니다. 언젠가 회사에 필요한 로고 가안을 받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사실 그렇게 중요한 로고도 아니였지만 어린시절부터 제가 당연하게 여겼던 기회를 당연하게 박탈당했던 이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랐습니다. 어찌나 정성들여 가안들을 보내주던지, 부탁한 제 자신이 민망하고 미안할 정도였습니다.

 

한번은 다른 친구들과 함께 집에 초대해서 같이 영화도 보고 저녁도 같이 했습니다. 사우디에서 살려면 홈엔터테인먼트는 필수입니다.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대형티비를 모두 갖추고 같이 비디오게임도하고 보드게임도 했습니다. 그렇게 재미있어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그렇게 속상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술을 먹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칼칼한 목을 달래주는 콜라를 한잔하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기가 찹니다. 

여성으로서 외출은 쉽지 않고, 복장은 제한받고, 집에서 할 수 있는 몇 안되는 놀이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거진 전부 다라고 합니다. 

 

시리아 내전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시리아를 종종 방문했었다고 합니다. 시리아로 돌아가면 시리아사람들은 이 친구를 사우디년이라고 욕한다고 합니다. 사우디에선 시리아년이라고 욕을 듣죠. 이런 이야기를 천진난만하게 웃으면서 합니다. 저는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 몰랐습니다. 당사자는 웃고있는데 화를 낼 수도 없는거고 지나간 군대 시절 마냥 웃으며 넘길 수는 없는 이야기였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사우디에 살고있지 않기 때문에 가끔 인스타그램이나 메신저를 통해 안부를 묻곤 합니다. 모든 것이 멈춰버린 나라에서 이 친구는 여전히 "그때 참 재미있었는데.."라며 같이 놀던 시간을 회상하는 메시지를 보내곤 합니다. 친구의 순수한 마음이 가슴 한켠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다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조용히 응원하고 그 친구의 나라가 다시 잘 안정되길 바라는 거겠지요. 

 

이유없이 하얀 밤을 걷고 있는 이들이 있습니다. 밤을 빼앗기고 끊임 없이 하얀 밤만을 걷는 이들이 있습니다. 

저에게는 당연했던 낮과 밤과 같은 소소한 일상의 행복, 다양한 기회와 만남, 즐거움들은 그들에게는 마블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영화관을 나서며 "재미있었다"라고 말하는 것 이상의 의미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가 가진 것에 대한 만족과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욕심 사이에서 방황할 때, 사우디에서 만났던 친구들과의 만남을 곱씹어보곤 합니다. 

 

나름 모자이크 한다고 했는데 모자이크를 해도 거북함을 감출 수가 없어 최대한 덜 거북하게 사이즈를 줄여본 이미지

수년 전 현재 503 뱃지를 달고있는 대한민국 전 댓통년은 이런말을 했습니다. 


"다 어디갔냐? 다 중동갔다고"

저 말 철썩같이 믿고 해외로 나온 청년이 많기야 하겠냐만은 저 말과 아예 상관 없이 나온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은 곧 정책방향이고 뉴스 전파를 타는 순간 사람들 뇌리에 박히고 사고회로 한구석에서 자리를 잡습니다. 

국가자원을 총동원해서 국내에 일자리를 만들 생각을 해야지 나라가 텅텅비도록 나가 타지에서 돈벌어라 라는 말이 분노를 금치 않을 수 없습니다. 

 

물론 해외에 나와 돈을 버는 행위 자체가 무시받거나 무의미한 활동은 아닙니다. 젊어서 고생을 돈주고 하는 것이다 라는 옛말도 있듯이 청년들은 사막에서 삽질도 해보고 아프리카에서 인종차별도 당해보고 한국에서는 극소수만 당할 법한 길거리 신변위협도 당해봐야 세상경험 좀 해봤네, 사람이 됐네 소리는 듣는 거겠지요. 

 

사실 저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저는 자유의지로 해외취업을 했고 현재 생활에 77%정도 만족하고 있습니다. 23%는 영원히 채워지지 않을 예정이지만요. 한국에 적을 두고 완전히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해외에서 거주 한다는 것은 영원히 100점짜리 답안지를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생각합니다. 77점짜리 답안지만 줄곧 내면서 도달 할 수 없는 23%를 영원히 안고 살아야겠지요. 

 

저 윗 분의 말씀대로 현재 중동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전 저 사람에 대해 단 한번도 좋은 이야기를 한 적도 투표지에 붙은 먼지조차 감히 향하지 못하게 하며 살아왔는데 저 분의 말씀대로 살게된 사람입니다. 전공이 아랍어입니다. 하지만 꼭 그렇게 때문에 여기까지 흘러오게 된건 아닙니다. 어쩌다 보니 오게되었습니다.

 

첫 직장은 사람인을 통해서 해외직을 구하는 자리에 지원해서 처음 나왔지만 그 이후에는 월드잡을 통해서 구직을 했습니다. 해외에 직장을 구할 때 꼭 월드잡을 통해 구하시기 바랍니다. 이유는 해외정착금 지원이라고 해서 개도국이 경우 최대 800만원까지 정부에서 청년에게 지원을 해줍니다. 저는 이년전에 신청했기 때문에 400만원밖에 받지 못했지만 지원금이 두배로 뛰었네요. 

 

상세한 사항은 아래 링크 참조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조 : https://www.worldjob.or.kr/ovsea/sbsd.do?menuId=1000000041

 

정착지원금·민간알선 지원

지원내용 취업애로청년층의 경우, 최대 400만원 (1차 250만원, 2차 150만원) --> 지원인원 3,400명(선진국 2,000명, 신흥국 1,400명) * 지원인원 달성 시 조기 마감될 수 있음 지원금액 정보 구 분 지원금액 지원방식 지원금 우대국가 800만원 (1차) 취업후 1개월 : 300만원 지급 (2차) 취업후 6개월 : 200만원 지급 (3차) 취업후 12개월 : 300만원 지급 선진국 분류국가 400만원 (1차) 취업후 1개월 : 200만

www.worldjob.or.kr

 

햇수로는 벌써 4년차에 접어들었습니다. 한국에서도 직장 생활을 아예 안하고 넘어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장단에 논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년째 계속 중동만 돌고있습니다. 

구직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운'인 것 같습니다. 해외 취업도 만찬가지입니다. 운 다음으로 필요한 것을 따져본다면 모두가 생각하는 '어학능력'일 것입니다. 사실 영어가 만능키입니다. 영어를 기본으로 하고 그리고 제2외국어가 의미가 있어지기 때문이죠. 

요즘엔 동남아쪽은 현지어를 할줄 아는 한국사람들이 많아져서 영어를 건너뛰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영어는 만능키입니다. 

그렇다고 해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영어를 자연스럽게 구사를 하냐 라고 하면 그것도 아닙니다. 

 

심지어 대사관과 같은 공관에서 근무하는 외교관들 조차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국내 굴지의 대기업의 주재원들도 어설픈 영어를 구사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만나고 지원하는 자리는 외교관이나 주재원들 즉 국내에서 정식 부임/파견되는 직원들의 갭을 채우기 위한 자리들이 많습니다. 

 

이것을 '현지채용' 줄여서 '현채'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국내 파견 직원들을 '주재원'이라고 부르면 될 것 같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업과 정부기관은 주재원과 현채의 구조로 이루어집니다. 주재원은 기존에 근무하던 직원들을 파견 보내는 것이고 현채는 해당 지역만을 위해 추가적으로 고용하는 인원입니다. 대사관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부에서 파견나오는 직원인 외무공무원이 있고 대사관은 본부 가이드에 맞춰 행정직원(현채)를 고용합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현지채용은 주재원의 능력을 보완/보조하기 위해 고용되는 인원들입니다. 라는 것은 굉장히 포장된 말이고 적나라하게 얘기해보자자면 한마디로 요약이 됩니다. 

 

'비용 절감'

 

주재원과 현지채용의 임금 차이는 못해도 4배 이상 납니다. 주재원으로서 따라오는 복지 혜택을 다 포함한다면 5배는 족히 될 것입니다. 아직까지 나오는 주재원들의 어학능력이 좋지 못한 점도 있고 여전히 한국 대기업은 군대 문화를 답습하고 있는 실정이라 외국 직원들 관리가 쉽지도 않을 뿐 더러 문화적 차이로 갈등과 함께 업무에 큰 차질이 다분하게 발생합니다. 이를 중간에서 완충시켜주고 업무의 효율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주재원의 1/5 가격으로 한국인을 고용하는 자리가 바로 현지채용 자리입니다.

 

주재원들은 2년 내지 4년정도 파견근무를 하다가 한국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역시 이도 케바케입니다. 그러한 이유로 상당한 임금과 복지 혜택을 받습니다. 말그대로 Expat Package라 하여 본인 돈 한푼 안들어가도록 회사에서 전부 커버해줍니다. 

현채는 어떨까요? Local Package라고 해서 항공권정도만 회사에서 내주고 나머지는 전부 알아서 합니다. 임금은 한국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고, 현지 수준 대비해서는 높은 편입니다. 

 

참으로 불합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지에 살고있는 사람을 고용한 것도 아니고 한국에서 '모셔'온 한국인을 마치 현지에서 터전을 가진 사람 마냥 대접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관리자급 한국인을 파견해놓고 관리가 되지 않자 해당 법인에서 외국인이 있어야하는 자리에 한국인을 고용하는 기형적 구조입니다. 사실 한국에서 채용해서 또 다른 파견 직원을 보내는 것이 맞겠지요. 순전히 돈의 논리에 따른 기업의 궁여지책입니다. 

 

 

배경설명이 길었습니다. 우선 기분 좋게 장점부터 이야기해볼까요?

 

1. 임금(개도국만 해당)이 현지에서는 비벼볼만하다.

한국에서 충분히 만질 수 있는 돈이지만, 개도국에서 같은 돈을 받는다면 생활수준이 많이 달라집니다. 가령 예를 들어서 한국에서 250만원을 받는다 했을 때 집세, 식비, 교통비, 통신비, 취미생활비 빼고 나면 일년에 몇백만원 모으는 것도 쉽지가 않을 것입니다. 개도국에서 일을 하게 된다면 좋은 것은 모든 것이 싸다 입니다. 같은 월급을 받더라도 마음만 먹으면 지출을 최소화하는 것이 용이하기 때문에 돈을 모을 수 는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개도국을 가도 '외국인 물가'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돈을 모은다라고 했을 때는 현지인 수준으로 지출을 한다는 것이지 즐길거 다 즐긴다면 한국생활와 다를 바 없는 통장 잔고를 유지하겠죠. 적다보니 딱히 장점도 아니네요. 

 

2. 업무 경험/인생 경험을 압축해서 쌓는다

꼰대들은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 라고해서 한창 한국에선 경험과 젊을을 교환하는 열정페이가 아주 흥행했었습니다. 해외나오면 적어도 어마어마한 경험들을 압축적으로 하게됩니다. 적다보니 이것도 단점수준이네요. 그대로 이어 나가겠습니다. 해외법인이나 대사관 같은 경우 모두 규모가 그리 크지 않습니다. 그리고 현채의 목적이 주재원을 보조/보완하는 역할이라 사내에서는 상당히 요직을 점합니다. 대본사 커뮤니케이션이라든가, 회계라든가 사실 중요한 일을 맡길 것이 아니라면 비싼돈(현지인 대비)들여서 굳이 한국인을 고용할 이유가 없겠죠. 초년생이라도 일단 해외법인에 나오면 못해도 대리 과장은 되야 할 일들이 마구 쏟아집니다. 이게 과연 순기능인가 싶기도 하지만 수많은 책임감을 던져주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성장하는 좋은 경험을 쌓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에서 당연한 것들이 해외에서는 문제와 갈등으로 탈바꿈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또, 외국어로 일하기 때문에 본인 노력 여하에 따라서 어학능력이 비약적으로 성장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더 커지죠. 한국이 아무리 발전했고 선진적이지만 그 안에서만 살다보면 고이고 그리고 썩을 수 밖에 없습니다. 서는 곳이 달라지면 풍경도 달라진다는 말이 있듯이, 피사체가 아닌 앵글이 중요성도 알게 됩니다. 한국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기회가 될 수 도 있고, 주모가 주는 국뽕을 거하게 들이키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죠. 끝까지 적어보니 단점까지는 아니고 반장점으로 좀 더 기울었습니다.

 

3. 여행 다니기 좋다.

일단 한국 떠나살면 평생 못가볼 국가에 발 디딜 기회가 많아집니다. 하다 못해 일본에 취업을 하더라도 미국가는 비행기 값이 상당히 싸집니다. 저같이 중동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유럽, 중동, 아프리카, 동남아까지 모두 커버가 가능해집니다. 이것도 경험으로 넣으려고 했지만 이거 꽤 큰 장점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숫자까지 붙혀줬습니다. 특히 중동에 근무하시는 분들은 북유럽도 가뿐하게 다녀오시는 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한국에서 북유럽은 일생일대의 결단정도는 있어야 방문할 수 있죠. 해외에서 일하다보면 국내보다는 휴가에 관대한 것도 한 몫한다고 봅니다. 

 

4. 외국인 친구 사귀기 쉽다. 

해외 어디를 살아도 '외국인'이 된 이상 다른 만나는 모든 '외국인'은 저와 동질감을 느낍니다. 외국인 친구 만들기가 쉽습니다. 한국에서 외국인 친구 만들려면 어떻게 말을 걸어야 되나 라는 고민부터 하게되지만 사실 외국에서 또 다른 외국인을 친구로 만드는 것은 '안녕' 이면 족합니다. 사실 할 얘기가 널렸죠. 어디에서 왔고 어디서 일하고 그냥 하루 있었던 일 이야기 하면서 친해지는 거죠. 어렵지 않습니다. 바쁘고 여유없어서 못만나지 만나기가 어렵다던가 친해지기가 어려워서 친구를 만들기 힘들기는 어렵습니다. 

 

5. 국제 연애의 문이 활짝 열린다. 

여자가 됐든 남자가 됐든 현지인 혹은 외국인들과 교류가 많아지고 자연스레 썸타는 기회와 경험이 많이 생깁니다. 오징어가 해외 나간들 급속 진화가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가당키나 한소리냐고 할 수 있겠습니다. 저는 장담합니다. 오징어가 진화하지는 않지만 오징어도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얘기했죠,. 서는 곳이 변하면 풍경이 바뀝니다. 식탁 위 마른 오징어보다는 바다속을 유영하는 오징어가 더 매력적이지 않나요? 

 

6. 한국 직장 문화에서 멀어질 수 있다.

한국 꼰대 문화가 너무 싫고 남 신경쓰고싶지 않으신 분들에게는 최적의 조건입니다. 한국 사회가 아니기 때문에 어느정도 인간관계를 정리도 하고 얽매여야하는 관계도 상당히 줄어듭니다. 본인이 개척하기 나름이겠죠. 요즘엔 52시간 근무시간 도입과 워라벨 문화 정착 운동으로 한국도 많이 좋아졌다고 들었습니다. 한국에 있으면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간관계에 대한 스트레스를 꽤 많이 받게 됩니다. 그런 자잘한 스트레스가 사실 상 거의 소거됩니다. 해외라는 특수한 상황이 조금 불편하더라도 안면몰수하고 무시해버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줍니다. 물론 본인을 똑똑하게 챙기는 것과 이기적으로 사는 것은 구분해야겠지요. 

 

단점은 뭐가 있을까요?

 

 

1. 여러의미에서 한국에서 점점 멀어진다. 

선진국으로 취업을 하면 좋겠지만 워낙에 좁은 문이기도 하고 선진국은 선진국대로의 고충이 있습니다. 사실 한국보다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국가 해봐야 10개국밖에 안되고 교민이 많은 나라는 교민이 우선 채용이 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그 문이 폭이 정말 좁습니다. 개도국에서 일하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누락되는 업데이트가 많아집니다. 다들 OS 아시겠죠. 운영체제입니다. 폰에도 들어가고 컴퓨터에도 들어가고 최근엔 아이패드도 별도의 OS가 나온다고 해서 기뻐했습니다. 한국사람의 OS는 누가 뭐래도 한국입니다. 그래서 중간중간에 가서 부분 업데이트를 해줘야하고 뉴스 꾸준히 봐가면서 업데이트를 안해주면 다른 한국인들과 대화가 안되기 시작합니다. 호환성 충돌이라고나 할까요?

이걸 마냥 개도국의 탓이라고 하기에는 힘든게 한국이라는 나라 자체가 워낙에 빠르게 변화하다보니 그 어떤 나라도 그 속도를 못따라갑니다. 우린 모두 같은 시간에 사는데 한국만 유독 더럽게 빠르게 가는 상대성 이론같은 거죠. 점점 한국을 외국인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그 시선이 긍정적이냐 부정적이냐는 각자가 처한 상황과 국가에 따라 달라지겠죠.

 

2. 건강 걱정이 두배가 된다. 

해외 살다보니 건강 챙기기에는 정말 한국이 최고입니다. 의료서비스 받는 것도 빠르고 정확하고 쉽습니다. 하지만 해외 어딜 가더라도 외국인으로서 해당 국가 의료기관에 한국 의료시스템의 '정확', '신속', '용이''를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항상 내가 안아프길 각자 믿는 신에게 기도해야 하기도 하죠. 많은 사람들이 한국 방문할 때 의료서비스 몰아받기를 시전하곤 합니다만 마음 한구석에서 아프면 어떻게 해야하지 라는 불안감을 항상 가지고 살죠. 해외에서 감기라도 걸려서 몸져 누우면 그게 또 그렇게 서럽습니다. 

그래서 간단한 상비약은 항상 구비중이고 한국 갈때마다 종류별로 챙겨옵니다. 급 꿀팁 시전. 

 

3, 자칫 갑질에 빠진다.

해외에서 일하게 되면 아무래도 타지 중에 타지이므로 그만두는 것도 쉽지가 않고 혹시나 잘리게 되면 비행기를 타야하는 깜짝 이벤트가 발생하게 됩니다. 부산 살다가 서울에 직장 구해서 상경했다가 관두고 내려가는 것과는 스케일이 다르죠. 이런 심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특히나 요즘엔 취업난이 극심해져서 해외로 눈을 돌리시는 분들이 아주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걸 읽고 계신다면 이미 해외에서 일하고 계시거나 준비하고 계신 분이겠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 샌다고 꼭 국내에서 갑질하던 사람들이 해외 나와서도 갑질합니다. 해외에서 현채로 일하는 것은 갑질에 취약하기도 합니다. 

 

4. 느리고 이해할 수 없는 업무 방식에 속이 터진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한국은 굉장히 빠릅니다. 안 빠른게 없죠. 국내에서는 모든 기업이 '빨리빨리'하기 때문에 게으름으로 인한 불필요한 소모전을 보기가 힘듭니다. 하지만 해외는 다릅니다. 워낙에 빠른 문화에 살아온 한국인들은 마치 영화를 0.5배속으로 보는 것 마냥 그저 답답합니다. 개발도상국들, 특히 중동은 끝판왕입니다. 사회의 밑바닥부터 최상위층까지 안 느린 곳이 없습니다. 우리 현지인 직원들도 우리 회사 직원인지 프리랜서들인지 구분이 안갈 정도로 책임감없이 일하는 경우도 많고 아무리 쪼아도 만족할 수 있는 속도나 능률이 나오지 않습니다. 현지채용되는 한국인들이 그 큰 갭을 채우고자 채용되는 것입니다. 

 

나라마다 차이가 당연히 있습니다. 저는 선진국에서 일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일반화를 한다기 보다는 중동쪽 특화된 의견으로 봐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동남아쪽은 마인드가 한국인과 비슷해서 일하는 것이 수월하다고는 들었습니다. 하지만 업무에 있어서 한국인을 만족시키는 것은 쉽지가 않습니다. 

 

해외취업이라는 것은 누구말마따나 텅텅 비도록 나갈만큼 쉬운 결정이 될 수 없습니다. 한번 나가면 돌아오기가 쉽지가 않을 뿐더러 금방 돌아오게 되면 커리어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시간과 돈, 에너지가 낭비됩니다. 

가까운 사례로는 같이 일했던 분 중 한명은 나름의 부푼 꿈을 안고 아프리카쪽으로 해외취업을 했지만 각종 갑질에, 불편한 생활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1년이 채 안되서 한국으로 귀국하였습니다. 다행히도 아프리카로 갔기 때문에 다시 취업준비를 할 수 있는 목돈을 벌어오긴 했습니다만, 가까운 청춘 1년이 낭비되었다는 느낌을 지울 순 없을 것입니다. 

 

77%라는 숫자는 아무리봐도 어색해보입니다. 숫자는 5씩 끊어서 보거나 10씩 끊어서 보는게 아무래도 보기가 좋죠. 시험을 보면 80점을 넘는게 아무래도 상위권에 근접했다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1과 10사이에서 7은 참 어중간 합니다. 중간도 아니고 상위권도 아니죠. 이러한 어중간함을 지우기 위해 행운의 숫자라는 이름을 붙혀주었나봅니다. 해외생활은 77이라는 숫자과 같습니다. 이방인으로서 해외에 거주한다는 것, 한국에서 대해서도 이질감을 느껴야한다는 것. '세계인'이라는 말로 좋게 포장할 순 있겠지만 결국 어중간 한 존재 '이방인'으로 귀결됩니다. 하지만 행운의 숫자의 의미로 가지고 있듯이 누군가에게는 큰 행운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만 글을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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