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

@ 꿈은 언제부터 코끼리가 되어버렸나.

5월요일 2015. 12. 30. 18:17

 

 


따각. 따각. 따각. 구두소리에 이어 의자에 앉는 소리가 들리고 조명이 환하게 들어오고 이내 눈이 불빛에 적응하자 무대 위 연주자의 모습이 들어온다. 몇번에 조율 끝에 연주자는 기타를 들어 왼손으로 기타목을 잡고 관객에게 인사를 한다. 박수소리가 터져나오고 오른쪽 무릎에 기타를 올려 자세를 잡자 관객의 이목은 연주자의 오른손으로 집중되고 이내 그 중 한 손가락이 기타줄을 부드럽게 탄현하며 연주가 시작된다. 


 요즘 세대를 부르는 말은 달관세대, 잉여세대,  N포세대 등 다양하지만 결국 하나로 귀결된다. 희망 없는 시대의 꿈꿀 수 없는 청춘. 

어린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내 꿈을 무엇이었을까 그리고 주위 사람들에게 너의 꿈은 무엇이었느냐 라고 물었을 때

기억을 못하는 사람이 태반, 그런걸 왜 묻냐며 미친 사람 쳐다보듯 보는 사람이 절반 그리고 웃으며 지금생각해보면 당치도 않는 꿈이였다며

대통령, 과학자, 세계정복자, 우주비행사, 만화가 등을 털어놓는 사람이 일부.


 영어에서는 어색한 상황이나 그 상황을 야기시키는 주제를 일컫는 숙어로 방 안의 코끼리(an elephant in the room)라는 표현이 있다. 

선생님들은 학창시절의 우리에게 지겹도록 적으라 했기에 억지도라도 만들어서 적어야했던 꿈을 우리는 왜 이제는 이토록 말하기 껄끄러워하게 된걸까. 

그야말로 꿈은 청년에게 있어 코끼리가 되어버렸다. 


 기성세대는 그놈의 '꿈'을 크게 가지라며 패기있게 살라며 청년들을 걱정하는 듯 다그치지만, 우리에겐 '꿈'이란 그저 '아프니까 청춘이다'식의 배려와 이해심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걱정이 아닌 노오력이 부족하다는 메아리로 돌아와 불편하게만 느껴질 뿐이다. 청년들끼리도 더이상 서로의 '꿈'을 묻지 않는다. 이제 그런건 사치라는 것을 알고있으니까. 치열한 생존게임만이 남겨져 있고 미래를 꿈꾸기에는 당장 내일 먹을 빵을 걱정해야하는 잔혹한현실이 눈 앞에 놓여있는데 '꿈'같은거 정말이지 사치로 밖에 느껴지지 않는다.



 어렸을 적에는 뭐라도 될 수 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통령이 뭔가 세계정복은 물론 우주정복도 

할 수 있을거 같았고 그것이 꿈이던 시절이 있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꿈은 

나이와 비례해 '현실'적으로 할 수 있을 법한 모양으로 변해갔다. 다시말해 그렇게 꿈은 작아져만 갔다. 세상을 향해 던졌던 원대했던 꿈은 어느새 깎이고 부서져 아주 작은 자갈이 되어 내 앞에 굴러돌아온다. 우리들의 꿈은 빨리는 특목고, 외고라는 '명문고 입학'이 되었고, 시간이 좀 더 흐르면 '명문대 

입학'으로 그 모습을 바꿨다가 이내 '대기업 취직'이 되었고 한없이 쪼그라들어 '서류합격'이 된 꿈도 

있고 '연애'가 된 꿈도 있다. 그렇게 한없이 한없이 쪼그라들어 아주 작은 원초적인 본능이자 생명체로서 처음 가져야했던 꿈 '생존'이 되어버린다. 


 연주를 마친 연주자에게 관중의 박수가 쏟아진다. 그는 다시 왼손으로 기타 목을 잡고 관중을 향해 답례로 가볍게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다. 다시 한번 박수가 무대로 쏟아지고 연주자는 무대 뒤로 퇴장한다. 그는 나이가 많다. 20대가 훌쩍 넘어서야 기타를 배우기 시작해 고작 10여년의 경력은 가진 기타리스트이다. 어렵사리 기회를 얻었고 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무대 뒤로 돌아와 대기실로 미처 다다르기도 전에 그는 다리에 힘이 풀려버린다


 짝꿍과 함께 써야했던 2인용 책상에 그어놓은 엄격한 분리선을 넘어 호기심을 이기지 못해 곁눈질로 살짝살짝 훔쳐봤던 옆자리 그 친구들의 장래희망, 꿈을 회상해보자면 과학자, 선생님, 만화가, 경찰관, 소방관이 참 흔한 꿈들이었다. 무려 20년전 꿨던 그 꿈을 친구들은 모두 이루었을까. 어른이 된 지금 

그 흔했던 꿈을 이루는 것조차 빡빡해진 현실에서, 속된 말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지금 우리는 도데체 어떤 종류의 '꿈'을 가져야 하는걸까.


코끼리는 무죄다. 꿈을 꾼 청년도, 꿈을 잃은 청년도 모두 무죄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일어설 수 있었다. 해냈다는 사실에 밀려오는 기쁨을 주체하지못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열어 주섬주섬 한 웹페이지를 연다.

하나의 글을 찾는다. A4용지 한장 남짓이 될 법한 내용의 글을 천천히 눈으로 음미하여 읽어내려간다. 어린 시절 얼토당토않는 꿈이라며 부끄러워 말도 못하던 그의 꿈에 대한 이야기이다. 마지막 문장까지 꼼꼼히 읽고 잠시 깊은 상념에 빠진다. 글의 제목은 "꿈은 언제부터 코끼리가 되버렸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