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

@ 엔드게임, '극일'

5월요일 2019. 8. 21. 00:07

'극복' 이라 부르기엔 남사스럽기 그지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노력이 하나있는데, 가끔씩 하는 '오래 달리기'이다. 

10키로가넘는 마라톤도 아닌 길어야 3~4키로 정도 체력장 수준의 '오래달리기'가 나의 일상적 극복이다. 

어린 시절에 기억하지 못하는 계기로 기관지에 모종의 문제가 생겨, 공기가 안좋거나 숨이 조금이라도 가파지는 기색이 있으면 

목에 가래가 쌓여서 뱉지 않으면 상당히 불편하다. 그래서 매연이 가득차 공기가 썩 좋지 않은 도심을 거닐 때나 하수구나 가로수 근처에 침을 뱉는 못볼 꼴을 꽤 많이 연출하곤 한다. 

 

솔직하게 말하면, 침이야 뱉으면 그만이니 남들에 비해 달리기하는데 있어서 큰 핸디캡이 있거나 그런 것은 아니지만, 

사람 마음이 또 조금이라도 불리한게 있으면 내 한몸 아니 마음 편하고자 적극 핑계로 만들어 버리곤 하는 것이 당연지사다.

 

그래서 인지 오래달리기는 나에게 나를 증명해내는 가장 쉬운 방법이다. 

말하자면, 귀가 들리지 않음에도 명곡을 작곡해낸 베토벤의 느낌을 내 멋대로 가져와서 자기위안으로 삼는 것이다. 

 

고작 3~4키로 정도 뛰면서 별 생각을 다하게되는데 대략적으로는 이런 생각들이다. 

 

"..한발자국만 더 한발자국만 더..할 수 있어 할 수 있어..여기서 지면 안돼..고작 이거밖에 안되는 녀석이였냐.."

 

달리기만 하면 저 마음속 싶은 곳에 숨겨두었던 중2병이 발현이 되는데 그래도 막바지에는 가장 어른스러운 감정이 나온다. 

악바리 근성에 기대지 않고 경험에 기대서 나름의 현명한 이유를 내 몸과 마음에 안겨준다. 

 

'군대는 이거보다 더했어'

 

군장매고 총까지 앞으로 들고 6키로씩 뛴 적이 있었다.

어느정도까지 한계를 부딪쳤는가 라고 했을 때 눈 앞에 시커매지고 정신을 잃기 바로 직전까지 갔고, 

어느정도까지 그 경험이 뇌리에 각인이 됐는가 라고 했을 때 인생에서 겪은 고통 중 가장 큰 신체적 고통이라 감히 말할 수 있을 정도다. 

 

내 생에서 가장 '극복'에 가까운 사건이였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많이 먹는다 라는 말이 '경험'의 중요성을 적절히 꿰뚫는 말이다.

극복도 해본 놈이 잘한다. 

 

참고 버티고 또 참고 버티면서 끝내 열매를 본 자만이 다음 게임에서 또 다른 결실을 맺을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듯이, 

극복의 경험만이 또 다른 극복을 창출해낼 수 있다. 

 

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다보니 한국에 대해 상당히 관심이 떨어지고 사실 현지 분위기에 대해 감이 잘 안오는 것이 사실이다.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고 '적폐청산' 이라는 거대한 블랙홀에 모든 이슈가 빨려들어가면서 대한민국 전체가 분리수거작업에 여념이 없었다. 

'적폐 청산'이 주춤하자 '종전'이라는 블랙홀이 등장했고 '종전'이라는 녀석도 금새 시들해졌지만 악재인지 호재인지 '극일'이라는 블랙홀이 등장했다. 엄밀히 말하면 적폐청산의 재등장이다. 과거사 청산.

 

쓰레기통을 비울 때 바닥까지 치우지 못해 남은 음식물 찌꺼기 마냥 고약한 냄새를 풍기며 '일제의 잔재'는 대한민국 사회에 깊은 곳에 자리잡고 존재해왔다. 

 

우리가 학교에서 배우는 역사는 자랑스럽지 못했다. 자랑스럽기 쉽지 않았다.

 

우리의 한글은 과학적이고 위대한 문자이고, 유례를 보기 힘든 국난에 사람들은 의병이 되어  모두 일어나 극복한 사례가 수도 없었고, 한국 사람들의 근면성실함은 세계 어디서나 인정 받았고, 초압축성장으로 30년만에 순식간에 최빈국에서 경제 대국 11위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한강의 기적으로 세계에 보란듯이 일어난 나라이지만 한국은 결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였다. 

 

구시대의 막내가 되고자 했던 이들은 군홧발에 짓밟혀 먼지가 되거나, 공안의 도끼에 찍혀 이슬이 되었다. 

그리고 살아남은 자들 중 일부는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걸했고, 끝까지 저항한 자는 저잣거리에서 처참한 수모를 당해야했다. 

 

나라를 통채로 팔아먹어도, 우리의 딸과 아들을 팔아넘겨도, 집에서 키우는 개가 주인을 물어도, 대한민국은 '그래도 되는 나라'였다.

잘못 끼운 단추는 몸을 조이고 거동을 불편하게 한다. 이제는 더이상 잘못 끼울 단추도, 불편해질 공간도 없다.

 

문재인 정부는 아주 촘촘히 잘 짜여진 정부다. 

천재 건축가가 완벽히 설계하여 빈틈없이 훌륭한 경외로운 마천루가 아닌,

평등한 기회, 공정한 과정, 정의로운 결과를 염원하는 국민 한명 한명의 이름이 새겨진 벽돌로 이루어진 견고한 벽이다.

 

'극일'은 예뻐지기 위한 단순한 '단식 다이어트'가 아니다. 

'극일'은 온갖 몸 밖으로 배출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노폐물과 지방덩어리를 몸에서 지워내는 '건강 다이어트'이다. 

 

우리 안에 살아있는 극복의 역사과 경험을 다시 일깨워 '적폐청산'의 엔드게임인 '극일'을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기를 지독히 염원한다.

 

 

 

ps. 

 

쓰다 울뻔, 

실은 울었음.

엉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