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온다.

5월요일 2019. 7. 29. 04:16

밤새 시달리고 이 부끄러운 사실을 털어내려놓을 것이 없을 때는 내 발걸음을 항상 그녀의 집으로 향했다. 

살면서, 삶에서 힘들 때 내 이야기 들어줄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은 삶이 지독했을 지언정 그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축복이였다는 것을 이제서야 돌이켜본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는 나에게 있어 '은인'이다. 

지난밤에 있었던 일들을 입술을 지그시 문 채 끝까지 들은 그녀는 나에겐 이렇게 말하곤 했다.

"나이 들고 시간이 지나면 이해하게 될거다. 미워하지마라"

 

그녀는 불교에 꽤나 심취해있던 사람이였고 그래서 인지 당시 나에게는 그 답변도 어떤 사실관계를 떠나 열반의 오른 현자와의 문답으로 다가왔다. 그녀를 가장 빈번하게 찾아간 시기에는 인격이 형성이 채 되기 전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어리고 또 어렸다. 밤새 나를 흔들고 간 밤을 언젠간 너가 이해할 수 있을 거라는 해탈의 답은 어리고 어리석었던 나에게는 무의미했지만 지난 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 시간들은 위로였다.

 

밤은 나에게 그래서는 안됐다. 밤은 그래서는 안됐다. 세월이 흐르더라도, 내 나이가 지금의 두배가 세배가 되더라도 나의 밤은 그래서는 됐다. 나는 그 밤의 영원한 피해자 일거라 확신하고 있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고 나는 점점 강해졌고, 밤은 점점 시들시들해졌다. 밤은 그렇게 잔잔한 바다가 되었다가 어느 순간 다시는 찾아오지 않았다. 그렇게 밤은 시들어버렸고 내 인생에서 한 순간에 홀연히 연기처럼 퇴장했다. 

 

밤의 퇴장이 가져온 일말의 애잔함과 슬픔은 스톡홀름 증후군과 같은 것이라 생각했다. '애증'이라 부르기도 한없이 하찮게 느껴지던 감정이였다. 너무 긴 시간 나를 괴롭혀왔던 밤이 완전히 퇴장했다는 사실을 쉽사리 받아들이지 못하는 인지부조화라 치부했다.

 

수년이 흘러 '삶의 무게'라는 단어가 그 무게를 보여주거나 느끼게끔 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는 순간이 나에게 다가왔다, 

가족을 책임져야한다는 강한 의무감이 찾아왔다. 

하루하루가 내 어깨를 강하게 짓눌렀고 내딛는 나의 발자국이 허공으로 향해 내딛는 것이 아닌가 라는 두려움에 떨었다. 

 

그제서야 시간이 지나면 이해할 수 있을 거란 그녀의 말이 휘몰아쳐 내 머리를 때렸고, 지금이 시간이 지난 그 때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감당할 수 없는 삶의 무게를 차마 입밖으로 꺼낼 수 없었던 밤은 내가 처음으로 감당해본 삶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무게를 수십년간 지탱해왔다. 수천일의 어둡고 세상이 흔들이던 밤은 나를 윽박지르던 것이 아니라 어깨를 짓누르는 고생에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밤이 소멸해버린 후에야 알아차렸다. 

 

그것도 사랑이였음을. 서툰 사랑이였음을. 

나의 어리석음이였음을, 보잘 것 없는 오만함이였음을. 

 

밤은 그렇게 먼 곳, 다시는 가지러 가지못할 곳에 두고온 잃어버린 일기장처럼 내 마음 한구석에서 사라지지 않는 불편함이 되었다. 아니 죄책감되었다. 

 

사랑을 주는 것도 받는 것도 쉽지 않다. 사죄하고싶다. 

처음 경험해본 아들이라, 삶의 무게가 뭔지 모르던 어린이라 당신의 사랑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고 상처를 감싸주지 못했다. 

당신이 이 글을 읽을 일은 없다고, 당신이 지금의 내 마음을 알게 될 일도 없다고 잘 알고있지만 내 마음이 당신에게 닿기를 간절히 영원히 바랄 것이다. 

 

당신과 같이 '삶'에게 지지 않겠다.

당신과 같이 '어두운 밤'이 되지 않겠다.당신의 어두움을 품은 '별 빛 가득한 밤'이 되겠다.  

마음에 닿지 못해 갈 곳 잃었던 당신의 사랑마저 모두 세상에 베풀겠다.

당신의 몫 만큼 사랑하겠다.  

마지막으로, 당신이 그리 좋아하던 드라마 '모래시계'의 OST를 들으며 당신을 추억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