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기록

@ 영화 "명량"에 대한 단상

5월요일 2014. 8. 27. 00:30

사실 이 영화는 그 어떤 영화보다도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몇 주간 열심히 생각한 결과 아주 단순한 결론에 이르렀다.-심지어 여름감기라는 강한 병마와 싸울 때도 명량 왜!! 라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따- 


"우리 사회를 잘 설명해주는 간단하지만 아주 복잡한 현상"


사실 한국 영화에 대해 그닥 좋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지 않은 나에게도 "충무공 이순신"이라는 소재는 굉장히 매력적인 소재였다. 몇년전 크게 인기를 끌었던 "불멸의 이순신"이라는 드라마에 향수를 느꼈던 탓일까. 큰 기대를 했다. 뭐 스토리야 어차피 크게 잡혀 있으니 CG와 액션만 잘만하면 이건 대박이다! 배우들도 어디 손댈대 없이 완벽했다. 정말 감독이 바보가 아니라면 영화를 망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근데 알고보니 감독은 정말..음..바보보다 더 심한 표현을 쓰고싶다. 그사람은 감독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의 연출을 선보였다. 여러 평들을 봤을 때, 승리와 패배, 선조와 백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 인간이 몰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서의 고뇌하는 한 인간으로써의 "이순신" 이건 명작이다 싶었다. 자칫 빼먹을 수 있는 부분인데 그것을 주로 다뤘다고 하니 이건 명작 명작 명작이라고 다시 한번 외쳤다. 


근데 막상 열어보니 그건 그저 관객들이 멋대로 해석해버린 "명량"이였다. 

그곳엔 아무것도 없었다. 영화는 마치 잘 포장되어있는 질소 덩어리 한국 과자와 다름이 없었고 심지어 소리까지 크게 나서 도저히 돌아보지 않을 수 없는 정도로 시끄러웠다. 


영화 "명량"의 단점을 읋자면 밤이 새도록 얘기해도 부족하지 않다. 그중 몇개를 얘기하자면 이 영화는 영화의 기본이 안되어있다. 


자고로 영화는 감독과 관객의 소통의 장이다. 감독이 질문을 던질 수도 있고, 관객을 가르칠 수도 있고, 그저 하고자 하는 말을 주저리 주저리 늘어놓을 수 있다. 그게 영화이다. 

근데 이 영화는 도데체가 하고싶은 말이 없다 아니 뭔지 모르겠다. 심지어 위에 언급했던 이순신의 고뇌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그냥 아프고 병약한 이순신이 휘하에 부하장수들에게 꿍하게 가만히 있다가 혼자 나가 싸워서 두려움을 용기로 바꿔서 그들이 스스로 싸우게 만든다. 자기 아들한테만 쑥덕쑥덕 어떻게 해야지 어떻게 해야지 밀담만 하다가 영화는 후반부에 다다른다. 전지적 작가시점에서 봐도 이놈의 답답한 이순신 귓방맹이를 때리고싶은데 도데체 이따위 스토리를 누가 썼단 말인가. 마치 원피스에서 패기!!를 외치며 나가는 대장선을 보고 온몸에 닭살이 돋아 참을 수가 없었다. 감독에게 묻고싶다. 도데체 이 영화를 통해 당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이였나. 그냥 국뽕와 애국심 사회적으로 분열되고 힘들어하는 분위기를 이용해서 돈을 벌고싶었다고 말하면 그나마 이 영화에 대한 분노가 사그라들 것 같다. 좋은 식자재로 꿀꿀이죽을 만든 이 감독이 원망스럽다. 아까운 식자재...


두번째로 관객. 

도저히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바로이 관객이다. 이런 영화를 천이백만 심지어 이천만까지 바라보는 것이 한국인으로써 창피하다. 나름 헐리우드 밑에선 꽤 큰 영화시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그 질에서나 양에서나 어디에도 밀리지 않는 다고 생각했다. 그 힘의 원천이 바로 수준 높은 관객의 힘도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했다. 

내 생각은 그냥 틀렸다. 난 이것을 취향의 차이라고 치부해버리고싶지 않다. 그냥 상업논리에 휘둘리는 깨어있지 않은 관객의 수준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례라고 생각한다. 앞서 언급했듯이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바도 불분명하고 스토리의 개연성은 말할 것도 없이 허접하고 CG도 마치 2000년대 초반 영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일으켰다. 또 등장하는 캐릭터들이 아무런 역할 없이 등장하고 없어지는가 하면 과학과 고증은 개나 줘버려 라고 말하는 듯한 착각이 드는 장면이 다수 포진해있다(조총 저격, 회오리에서 판옥선 구출, 그외 전체적으로 엉망인 고증) 

 이런 영화를 보고 재미있다고 말하면 난 정말 할말이 없다. 진중권의 "졸작"이라는 표현이 "점수 너무 주셨네요" 라고 할 정도다. 잘해야 100만 정도 봐야 이 영화 수준에 맞다고 생각하는데, 한국 관객 중 일부는 심지어 대장선이 혼자 돌격 할 때 울컥하고 가슴 깊은 곳에서 뭔가가 올라왔다고 한다. 아마 토쏠린다는 표현을 고급스럽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억지감동만을 이끌어내려는 의도가 훤히 보이는데 거기서 감동 받았다면 그냥 굉장히 심약한 사람이 아니였나 싶을 정도다. 관객들이 좀더 수준 높은 영화를 보고 눈을 높혀야 하지 않나 라는 필요성이 정말 강하게 내 머리를 치고있다.


마지막으로 문화깡패 CJ

이 부분은 왜 논쟁이 깊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시긍로 프레임이 짜여지고있지만 문제의 핵심은 다른데 있다. 영화가 잘되니까 상영관이 깡패처럼 늘어나지 Vs 처음부터 상영관 깡패같이 독점하니까 억지로 흥행이 되는거다. 


이 두 입장이 아주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 우리가 살고있는 이 사회에서 소속된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선택권을 가지고 태어난다. 이론적으로 모두가 평등해야하고 공평해야 한다. 내가 해적을 보고싶으면 해적을 보는거고 명량을 보고싶으면 명량을 보고 가오갤을 보고싶으면 가오갤을 볼 수 있어야한다. 근데 지금이 작금의 상황은 그 선택권을 박탈당했는데 영화 "명량"의 배급사 CJ를 옹호하고 나선다는 것이다. 잘되니까 당연하지 라는 대기업의 논리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심지어 그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한다. 사회 전반적으로 문제가 되고있는 소기업 서민자본과 대기업 자본의 논리 싸움에서 결론은 이미 나와있다. 그렇게 관객이 선택하기 이전에 대기업이 선택한다. 결국 우리는 대기업이 준 선택지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고 진정한 의미에서 자유로운 선택이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 부분에 있어서 우리는 걱정을 하고 깨우쳐야 한다는 것이다. 선택을 하고 싶지 않다면 그저 소시민으로 살아가면 된다. 하지만 돈으로 절대 살 수 없는 이런 자유선택의 기회를 아무렇지도 않게 내팽겨쳐버린다면 향후 앞으로 대한민국 사회는 결국 대기업의 선택 안에서 살게 될 것이다. 질소만 가득한 한국과자만 먹게 될 것이고, 내수 소비자는 신경도 안쓰는 현기차만 타게 될 것이다.


영화 "명량" 사태를 난 이렇게 본다. 헐뜯을 것이야 까야 할 것은 말도 못하게 많다. 하지만 이러한 여론몰이에 휘둘린다면 언젠간 그 피해를 고스란히 우리 시민들에게 돌아올 것이다. 

우리 사회는 계속 양상을 보이고 있다. 시민들을 우매하게 만들고 박정희 시절에나 강조했던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누르려 하고있다. 내가 2014년을 살고 있는지 1970년대를 살고 있는지 헷갈릴 정도이다. 

난 우리 사회가 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후대에게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물려주기 위해서 한명 한명의 의식이 하나하나 깨어나야한다고 본다. 이런 적나라한 대기업의 상업논리에 올바르게 대처할 수 있는 시민이 점점 늘어나길 바란다. 


ps. 이번 기회로 확신하게 되었다. 스크린쿼터제는 없져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