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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스] 동일본 대지진 5년, 후쿠시마의 모습

5월요일 2016. 3. 12. 16:11

원문 : http://www.reuters.com/article/us-japan-disaster-search-idUSKCN0W6030


2011년 군입대 며칠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났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지났고 그때 썼던 글을 다시 읽어보다보니, 

후쿠시마와 그리고 세상이 후쿠시마를 바라보는 시선을 여전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더군요. 다시 한번 소식을 전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로이터 통신발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 아니 그곳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타카유키 우에노씨는 5년전 후쿠시마 원전의 멜트다운을 촉발시킨 쓰나미에 의해 휩쓸린 가족을 찾아다니면서 단 한 순간도 고방사능에 노출 되는 것에 대해 주저한 적이 없다. 우에노씨의 어머니와 딸 에리카의 시신은 이미 발견되었지만. 여전히 멈춰버린 후쿠시마 핵박절손 주변 해변에서 칼바람과 방사능에 맞서 그의 아버지와 아들 코타로의 시신을 찾아 마무리를 짓고자 하고 있다.


"부모로써 저의 가장 큰 의무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것인데, 저는 우리 아이들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최악의 부모이고, 아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습니다" 라고 우에노씨(43세)는 로이터 통신을 통해 밝혔다.


"딸을 팔에 안고 "미안하다" 말했습니다. 아직 아들 코타로를 안아보지도 미안하다는 말도 못했습니다." 라고 덧붙혔고, 우에노씨는 현재 후쿠시마 원전 북쪽 22km 떨어진 곳에 거주 하고 있다.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진도 9 지진과 건물 높이의 쓰나미는 일본 북동 해변을 따라 16,000명에 이르는 사망와 2,500명의 실종자를 발생시켰고, 도쿄전력 후쿠시마 다이치 원전에서의 대재앙은 그 일대 거주하던 주민들에게 집단적인 트라우마를 남겼다. 


원전에서 남쪽 3km 지점에서 거주했던 노리오 키무라씨는 후쿠시마에 남아 실종된 아버지와 아내, 딸아이 유나를 찾아 나설지, 어머니와 또 다른 딸아이와 함께 방사능으로부터 도망가야 할지를 선택해야 했다. 


"시신 찾기를 포기하고 가족들을 그 곳에 내버려두고 오게 되어서 너무 슬펐습니다. 다시 돌아왔을 때 상황은 가족들의 생존을 더 장담할 수 없었습니다." 라고 키무라씨(50세)는 말했다.


여전히 키무라씨가 하나 남은 실종된 가족인 유나를 찾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다. 키무라씨의 고향으로 들어가는 골목인 오쿠마시가 여전히 고방사능으로 인해 출입이 제한되기 때문이다.


최근 주말에 키무라와 자원봉사자들은 우에노씨와 함께 오쿠마 해변에서 바람에 휩쓸려온 잔해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유나의 흔적을 찾아보려 시도했다. 이 지역에는 일년에 30회, 1회당 5시간 까지만 방문이 가능하다.


일행들은 나무찌꺼기와 콘크리트 조각, 전신주, 구부러진 쇠파이프와 온갖 옷가지들을 휘저으며 다녔고, 방사능 측정기에서는 고주파 경고음이 끊임 없이 흘러 나왔다. 한 지역에서는 도쿄 시내보다 100배나 높은 시간 당 6 마이크로시버가 측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방사능은 키무라씨를 막을 순 없었다.


"딸아이를 찾을 때까지 멈출 수 없어요." 라고 키무라씨는 말했고, 이어서 딸 아이를 찾고 나서도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 나설 것이라 덧붙혔다. 이러한 고집과 완고함은 아시아 특유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으로 인한 것으로 설명 할 수 있습니다. 


"한번 사람이 죽으면, 육체 그 자체는 서양에서는 영혼과 별개의 하나의 물체로 보지만, 아시아에서는 신체에 영혼이 깃들어 있기에 육체와 영혼이 하나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라고 후쿠시마 의대 부속 아이주 의학 센터의 심리학 신이치 니와 부교수는 설명했다.



















2014/08/27 - [생각의 기록] - @ 3.11 일본 대지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