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기록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5월요일 2015. 12. 20. 20:47

지난 십년간 누구못지 않게 언어 덕후로 살아왔다고 자부할 수 있다. 

잘한다는 건 아니고 이거저거 많이 찔러보는데 10년을 소모했다는 말이다. 

내 모국어인 한국어는 물론-한국어도 글 잘쓰고 말 잘하려면 공부해야된다!-영어 그리고 대학교 때는 교양으로 스페인어와 독일어, 

복수전공으로 아랍어, 그리고 취미삼아 일본어 하나라도 제대로 하냐고 물으신다면 한국어도 딱히 뛰어난 네이티브는 아니다. 

슬픈 현실이지만 언어 습득에 있어서는 천재는 아닌가보다. 아니 그냥 난 부정할 수 없는 범인(凡人)인가보다. 

진짜 10년전만 해도 난 내가 천재인줄 알았는데 그냥 하면 다될 줄 알았다. 

뇌의 연산능력에 비해 자신감이 너무 커서 이래저래 과부하된 지난 10년이였다고 평가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래도 다양한 언어를 배우면서 전부 습자지같은 언어들로 남았지만 하나 나름대로 깨달은 것을 한마디로 하자면,


"언어습득은 난방과 같다"


너무 추워서 보일러를 키고싶었지만 하루만 더 하루만 더 버티다가 이런 생각이 스파크치듯이 팟! 떠올랐다.

방이 따뜻해지려면 계속 난방을 해야되는 건 당연하다. 그럼 가스비도 많이 나오고... 식비를 줄이게되고 결국엔 미라가 된다.


???


추운 바깥에 있다가 집에 들어오면 일단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바닥과 공기를 데우기 위해 빡세게 보일러를 돌려야한다. 

그거처럼 괴로운 순간이 없다. 버텨내야한다. 곧 따뜻해질거라 알고있으니까. 난 분명히 보일러를 틀었으니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나면 바닥이 따뜻해지고 공기가 따뜻해진다. 


여기까지가 언어를 배우는 첫번째 넘어야할 언덕이다. 


알파벳을 배우고 그 언어를 '인식'하는 단계부터 척봐도 알아볼 수 있고 뜻은 몰라도 읽을 순 있는 그런 단계다. 이제 막 집에 들어온거다. 

이제 보일러 온도를 올려서 빡세게 돌리는 단계다. 단어를 외우고 문장구조를 배운다. 언어 배울 때 첫번째로 겪는 장애물이다. 

단어는 안외워지고 문장구조는 눈에 안들어온다. 하지만 보일러를 틀었으니 곧 방이 따뜻해질거라는 믿음과 같이 지속적으로 단어와 문장구조를 외워야한다. 이게 보일러는 빡시게 굴리는 과정과 같다. 


이제 바닥이 따뜻해지고 공기가 어느정도 따뜻해졌다 생각하면 슬슬 보일러 온도는 적당히 맞추고 열을 유지하는데 최선을 다해야한다. 

현대인이 어디 시간이 많은 생명체인가. 언어만 할거라면 가스보일러만 주구장창 돌리면 되지만 가스레인지도 되고 온수도 써야되고

가스 쓸 곳은 많은데 보일러 쓰는데만 펑펑 쓰다가는 저 위에 써놨듯이 먹지못해 죽은 미라가 되고 만다. 


이제 보일러를 적당히 온오프를 해야될 차례이다. 두번째 언덕이다.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가스와 가스요금이라 생각하면 된다. 가스요금을 아끼는 동시에 방도 따뜻하게 유지하고싶다면 밀당을 해야된다. 

주기적으로 언어를 손에 잡고 놓지 말아야한다. 보일러는 끈 기간이 길어질수록 방은 추워지듯이 계속 언어에 노출되고 공부해야한다. 

그 기간이 길어질수록 방을 따뜻한 온도 유지하기 힘들어 질 것이다. 


특히 여러 언어를 배운다는 건 정말 여러개의 방을 유지하는 것과 같다. 

두 방을 모두 따뜻하게 유지할려면 한정된 시간과 자원을 더 쪼개거나 아니면 선택과 집중을 하거나 해야한다.


어느정도에 프리토킹이 가능한 경지를 오른 것을 온오프시간을 최적화해 이전보다 훨씬 좋은 효율로 온도를 유지할 수 있는 경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언덕은 존재한다. 마지막 세번째다. 이게 제일 문제다. 아직 바깥은 겨울인데 보일러좀 만진다고 추위를 잊은 사람들은 그냥 보일러를 끈다.  어느정도 경지에 올랐다 한들 절대 손을 놓으면 안된다,

아직 바깥은 겨울인데 건방지게 보일러를 끄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서 끄면 또 다시 보일러를 빡세게 돌려야하는 상황이 와버린다. 


마지막 단계 '봄'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그 봄이다. 

보일러를 떼지 않아도 썩춥지 않은 봄. 

하지만 알다시피 언어는 끝이 없다. 외국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비슷하게는 갈 수 있겠지. 오 원어민급인데 라고 착각을 할 수 있게는 만들 수 있다고 본다. 

그 단계가 '봄'이라고 본다. 하지만 알다시피 '봄'에도 보일러는 가끔 틀어야한다. 온수도 필요하고..가끔 꽃샘 누나가 와서 못되게 구니까. 

이때는 가끔씩만 보일러를 틀어주면 된다. 


막상 쓰고나니까 이게 무슨 병맛글인지. 

혼자 방에서 추위와 싸우다가 와 이거 대박 비유인거같은데 라면서 영감을 얻은건데 막상 쓰고나니까 길기만 길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