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의 방법이 있고 그 때의 단계가 있다.
'그 때'라는 것은 누구도 알지 못하는 아주 적절한 '기간'이다.
우리는 종종 지나고 나서 "그 때가 그 때였구나"라고 깨닫는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
여러 나라의 사람들과 일하게 되면서 감사하게 되는 부분이 한가지만 있다면,
한국이라는 나라에 살면서 어지간한 '그 때'는 잘 챙겨온 삶이라는 것이 끊임 없이 증명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걸음마를 떼고, 한글을 읽고, 예의범절을 배우는 등 배워야할 시기에 과한 느낌이 있지만 '그 때'라는 것을 명확히 하는 사회이다.
한국에서 일할 때도 마찬가지로 한가지가 되었든 여러가지가 되었든 결핍을 부지런히 타인들에게 드러내는 사람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해외에 나와 일하면서 특히 개발도상국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점은, 이 곳에서의 사람들에게서 우리가 당연시 하는 요소들이 당연스레 결핍이 되어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한국은 상당히 나이대별로 달성해야하는 달성과제가 꽤 명확히 정해져있는 경직된 사회이기 때문에, 사회 구성원들은 별 생각하지 않고도 기본적인 달성 과제정도는 모두가 알고있다.
내 사례의 경우, 그것에 싫증이 나 버티지 못해 떠난 한국이지만 친구들 중에서는 이를 아주 잘 따르고 지켜서 다음 달성과제를 바라보면서 사회가 부여한 충실한 삶을 살고있는 친구들도 몇몇이 있다.
다시 돌아와서, 이런 사회는 '진로'라는 개념이 잘 없다. 나오는 대로 나오고, 살아지는 대로 산다.
갖춰야 하는 기본 소양의 저지선이 없다보니, 인격의 밸런스가 붕괴한 사람들이 우후죽순 나타난다.
가령 예를 들어, 학교를 들어가기 전까지 기본적인 언어를 습득하지 못한 아이들은 학우들에게 소통의 부재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폭력적인 행동으로 표출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렇게 악순환은 시작되고 또 반복된다.
한번 놓쳐버린 '그 때'는 잔인하리라 할만큼 큰 댓가를 치뤄야한다. 놓친 시간에 배의 노력이 들어간다. 행운이 오지 않는 이상, 다가올 '그 때'도 놓치기 십상이다. 잘못 고른 밥그릇 마냥 매 끼니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
이런 사회는 그렇게 흘러간다.
타고난 운이 좋아 제대로 교육 받은 부모를 만나거나 타고난 명석한 두뇌를 가지고 태어나지 않은 이상, 사회는 어떠한 인격 안전망도 펼쳐주지 않는다. 그렇게 대부분이 태어난 순간부터 나락으로 빠진다.
살고있는 도시의 공기가 안좋으면 자연스레 살고있는 시민들의 폐가 안좋아지듯, 사회적 분위기는 타고난 운마저 부패시키기도 한다.
두눈박이는 외눈박이 세상에서 괴물이 될 수 밖에 없다. 한 눈을 감은 들 외눈박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두눈박이가 아닌 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매년 떠나는 사람이 수백 수천이다. 그렇게 외눈박이들은 외눈으로 보는 반쪽 짜리 세상에 갇혀 살게 된다.
'그 때'는 단순히 서사적 시점 뿐만 아니라, 관계적 시점 또한 포함한다.
다시 말해, 언제 누구를 만나냐가 우리가 기대해야하는 '그 때'의 조건이다.
해외 생활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 하나는 영혼까지 끌어모아 떠난 미국 여행에서 만난 한 남자였다.
이 거대하고 드넓은 세상에서 그 시간에 그 자리에 그 남자와 내가 놓여졌고, 만남은 게임을 바꿔버렸다.
"하필이면 나는 늦잠을 자 조식 시간이 끝나기 바로 직전 노트북을 들고 식당으로 갔고, 식사를 하면서 둘 곳 없던 눈을 두기 위해 네이버을 접속을 했고, 마침 늦잠을 잔 그 남자도 느즈막히 내려와 조식을 먹던 중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는 것을 나의 노트북 네이버 화면을 통해 알아차리고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고, 하필이면 같이 세계여행을 하던 그의 아내는 핸드폰에 문제가 있어 남편의 전화를 받지 못한 상황이였고, 그는 내 폰을 통해 가까스로 아내와 통화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는 답례로 한식당 뷔페를 사주었고, 우리는 밥을 먹으며 서로의 인생에 대해 길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그의 이야기는 나에게 모험에 대한 꿈과 용기를 주었고 날 이자리에 있도록 만든 가장 큰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 때'의 종류가 몇이든 조건이 무엇이든을 떠나 이런 나라에 사는 사람들은 '그 때'가 존재한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또 생을 마감한다. 이런 나라에서는 누구도 '그 때'를 기다리지 않는다. 눈 앞 마쉬멜로우만을 노려보는 인내와 신뢰가 부재한 그런 사회이다.
'생각의 기록'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엔드게임, '극일' (0) | 2019.08.21 |
---|---|
@시간이 지나면 '이해'가 온다. (0) | 2019.07.29 |
@ 백야행, 하얀 밤을 걷는 사람들(feat. 사우디아라비아) (0) | 2019.06.08 |
@ 해외취업 경험담/평가 (feat. 외노자) (0) | 2019.06.07 |
@ 과거형이 아닌 재앙, 후쿠시마의 악몽 (0) | 2017.07.07 |